1. 왜 훈민정음인가
1.1 훈민정음, 그리고 그 안의 여러 책
1446년 세종은 백성이 쉽게 쓰는 글자를 만들고자 새 글자 스물여덟 자를 반포했습니다. 이 글자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훈민정음이며, 동시에 한글의 창제 원리를 적은 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단 책에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책 | 펴낸 해 | 누가 | 무엇이 담겼는가 |
|---|---|---|---|
| 해례본 (解例本) | 1446 |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 | 글자의 창제 원리와 자모의 짝을 직접 풀이한 정본 |
| 언해본 (諺解本) | 1459 | 세조 때의 편찬자들 | 세종이 직접 지은 본문(서문과 예의)을 한글로 풀어 옮긴 보급용 책. 창제 원리를 풀이한 해례 부분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
| 운해본 (韻解本) | 1750 | 신경준 (조선 후기 실학자) | 해례본이 사라진 시기에 음운을 새로 정리한 후대의 해설서 |
이 가운데 한글 자모가 어떤 원리로 설계되었는지를 직접 적은 책은 해례본 한 권뿐입니다. 자음 열일곱 자를 발음이 일어나는 입 안의 자리에 따라 다섯 자리(아, 설, 순, 치, 후)로 묶고, 각 자리를 다시 다섯 기운(목, 화, 토, 금, 수)에 대응시킨 풀이가 "제자해(制字解)"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글 스물여덟 자는 만들어지던 그 순간부터 오행의 짝을 품도록 설계된 글자입니다. 후대의 누구도 그 짝을 다시 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1.2 해례본의 실전과 1940년의 발견
그러나 해례본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어느 시점부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들에게는 한글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사료가 한동안 없었습니다.
1750년 신경준이 운해본에서 한글의 음운을 새로 정리한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일입니다. 운해본은 신경준의 학식과 정성이 모인 책입니다. 다만 1차 사료(해례본)를 보지 못한 채 짝을 다시 추정한 책입니다. 이 추정 과정에서 일부 자음의 오행 짝이 해례본과 어긋났고, 특히 후음(ㅇ, ㅎ) 자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생겼습니다.
해례본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40년의 일이었습니다. 경상북도 안동의 한 종가(宗家)에서 한 권이 발견되었고, 그 뒤의 연혁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 1962년에 국보 제70호로 지정
-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 지금은 간송미술관 소장
발견의 의의는 단순한 책 한 권의 귀환을 넘어섭니다.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후대의 추정이 아니라 창제자의 직접 해설로 다시 손에 쥐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1.3 이음이 해례본을 따르는 세 가지 이유
이음의 작명은 한글 자모를 오행에 대응시키는 단계에서 해례본의 본을 따릅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1차 사료의 권위입니다. 해례본은 한글을 만든 사람들이 직접 그 원리를 적은 책이며, 운해본은 그 원본이 사라진 시기에 후대의 학자가 다시 추정한 책입니다. 문헌학, 고고학 같은 다른 학문에서도, 원본이 손에 있으면 원본을 우선합니다.
둘째, 한글 자모의 설계와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해례본의 자음 짝은 글자가 만들어진 그 단계에서 정해진 짝입니다. ㄱ, ㅋ이 어금닛소리(아음)로 묶이고 목(木)의 기운에 대응된 것은, 이 자음들이 입의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울리는지를 처음부터 같은 원리로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글자의 모양과 소리와 오행이 한 자리에서 나온 셈입니다. 운해본은 이 설계 자체를 다시 만든 책이 아니라, 사라진 원본을 보지 못한 채 짝만 다시 추정한 책에 가깝습니다.
셋째, 두 책이 가장 크게 갈리는 자리가 이름에 자주 쓰이기 때문입니다. 해례본과 운해본이 가장 크게 갈리는 자리는 후음(ㅇ, ㅎ) 계열의 오행입니다. 이름의 자음에는 ㅇ과 ㅎ이 적지 않게 들어가므로, 이 자리의 짝이 달라지면 같은 이름에 대한 오행 분포 자체가 달라집니다. 추정과 원본이 어긋날 때 원본을 택하는 것이 학술의 도리입니다.
1.4 신경준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상의 이유가 1750년의 신경준이 "틀렸다"는 단언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신경준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 안에서 한국어 음운의 체계를 다시 세웠고, 그 학문적 성취는 그 시대의 결과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다만 이음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1차 사료가 손에 있는 지금, 작명의 한 단계를 어디에 기댈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며, 이음은 그 한 단계에서 해례본을 따릅니다.
1.5 사주는 같습니다, 이름이 다를 뿐입니다
이음의 결과를 사주를 다루는 다른 서비스와 비교해 보면, 사주 자체는 동일하게 나옵니다. 사주는 천문 계산이고, 만세력(萬歲曆)은 어느 서비스에서나 같은 천체 위치를 봅니다. 같은 생년월일과 시각을 넣으면 같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가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차이가 나는 자리는 이름입니다. 사주에 어떤 이름이 어떻게 보완으로 얹히는지를 푸는 단계에서 작명소마다 기대고 있는 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음의 보완은 1446년 해례본의 본을 따릅니다.
1.6 본 절의 요약
- 훈민정음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해례본(1446), 언해본(1459), 운해본(1750) 세 갈래의 책이 있고, 그 가운데 한글 자모의 설계 원리를 직접 적은 책은 해례본뿐입니다.
- 해례본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1940년 안동의 종가에서 다시 발견되어, 국보 제70호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이어졌습니다.
- 이음은 1차 사료의 권위, 자모 설계와의 직접 일치, 후음 자리의 결정적 차이, 이 세 가지 이유로 해례본의 본을 따릅니다.
- 사주는 어디서 보아도 같습니다. 차이가 발생하는 자리는 이름과 오행을 잇는 단계입니다.